중등부 기하학, 그중에서도 '작도' 파트를 가르칠 때면 교실은 늘 작은 전쟁터가 된다.
"선생님, 컴퍼스 심이 부러졌어요." "아씨, 선이 자꾸 비뚤어져요. 아귀가 안 맞아요!"
칠판 앞에서는 우아하고 완벽해 보이던 삼각형의 합동 조건이, 아이들의 책상 위로 내려가면 지우개 똥과 찢어진 시험지로 변한다. 각도를 똑같이 옮기고 선분을 복사하는 그 아름다운 논리의 과정을, 아이들은 그저 '손재주 테스트'쯤으로 여기며 짜증을 낸다. 컴퍼스 바늘에 찔려가며 툴툴거리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그냥 스마트폰에서 손가락으로 쓱쓱 그어보게 할 순 없나? 게임처럼 띡 누르면 선이 그어지고, 틀리면 1초 만에 다시 시작하고.'
생각은 늘 굴뚝같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매일 아이들 수학 문제 풀이를 봐주고 학원 차량 시간을 챙기는 평범한 수학선생이지, 밤새워 까만 화면에 영어를 타닥타닥 치는 천재 개발자가 아니니까. 앱을 하나 만들려면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모여서 수천만 원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만 주워들었을 뿐이다. 내 머릿속의 '기하학 작도 앱'은 그렇게 몇 년째 상상 속의 폴더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보게 되었다. 코딩 문법을 전혀 몰라도, 그냥 AI에게 내가 원하는 걸 말로 설명하면(Vibe) 알아서 프로그램을 짜준다는 것이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삼각형 그리는 게 얼마나 수학적으로 복잡한데, 말 몇 마디로 그게 되겠어?'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퇴근 후 텅 빈 교무실에 앉아 평소 쓰던 AI 채팅창을 열었다. 마치 새로 온 알바생에게 업무 지시를 하듯, 내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툭툭 던져보았다.
"화면에 점을 찍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봐. 스마트폰에서 손가락으로 터치해도 잘 그려져야 해."
잠시 후, AI가 외계어 같은 코드 뭉치를 와르르 뱉어냈다. '이걸 어쩌라는 거지?' 싶었지만, AI가 시키는 대로 코드를 복사해서 테스트용 웹사이트에 붙여넣고 실행 버튼을 눌렀다.
순간, 모니터에 새하얀 캔버스가 나타났다. 마우스를 꾹 누르고 움직이자, 까만 선이 내 손길을 따라 그어졌다. 점을 찍으면 점이 생겼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물론 허접했다. 선은 삐뚤빼뚤했고, 모바일에서는 화면이 제멋대로 확대되는 등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상상만 하던 무언가가 내 손끝에서 '실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코딩 책 한 번 제대로 펴본 적 없는 내가, 단 5분 만에 터치가 먹히는 디지털 캔버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라? 이거 진짜 되네...?"
자신감이 붙은 나는 무작정 요구사항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을 긋는 걸 넘어서, 원을 그리고 교점을 찾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내 들뜬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요구사항이 '기하학의 수학적 원리'로 깊어지자, 이 똑똑해 보이던 알바생(AI)이 슬슬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선이 화면 밖으로 튀어 나가고, 엉뚱한 곳에 교점이 생겼다.
'아, 역시 안 되는 건가. 이 녀석 하나만 믿고 가기엔 무리인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한 순간, 문득 엉뚱하고도 발칙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깐, 이 녀석이 수학을 헷갈려 한다면... 코딩 잘하는 녀석이랑 수학 잘하는 녀석을 따로 불러서 둘이 싸움을 붙이면 어떨까?'
그렇게 나는, 텅 빈 교무실에서 두 인공지능을 맞붙이는 기묘한 배틀의 심판이 되기로 했다.
구글 AI Studio로 만들었습니다. 영어가 보이는 것은 이 녀석에게 대답을 한글로 하라고 하면 해결됩니다.
더 좋은 것은 저 버튼들 예쁜 것 좀 보세요.
유클리드께서는 점은 "크기가 없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원을 그리고, 원의 중심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겠죠? 라는 질문을 하면,
보이지 않는 점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데,
우리 AI는 그런 제 맘을 딱 알아주었어요.

(2편 '창과 방패의 대결: 챗GPT vs 클로드의 코딩 배틀'에서 계속)